밤 문화 전문 기자로 일 한지 이제 2개월. 나는 아직까지 수습 딱지를 달고 다니는 햇병아리 신입 기자다. 일에 대한 파악은 어느 정도 완료된 상태지만 요즘 나를 속 썩이는 문제가 하나 생겼다. 기사 쓰는 거야 대학 내내 글만 배워 온 터라 어찌어찌 써갔는데 문제는 밤 문화에 대해 아직까지 제대로 파악이 안 됐다는 것.
그러다 어제 문득, 불철주야 밤 문화 체득을 몸소 실천하는 동료 선배 기자들의 프로정신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모름지기 모르면 몸으로 부딪혀봐야 아는 법. 나는 지체 없이 전화기를 들어 밤 문화라면 자다가도 발기가 된다는 친구에게 전화 해 ‘짝집’ 투어를 제안했다. 물론 대답은 ‘콜’.
그러다 어제 문득, 불철주야 밤 문화 체득을 몸소 실천하는 동료 선배 기자들의 프로정신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모름지기 모르면 몸으로 부딪혀봐야 아는 법. 나는 지체 없이 전화기를 들어 밤 문화라면 자다가도 발기가 된다는 친구에게 전화 해 ‘짝집’ 투어를 제안했다. 물론 대답은 ‘콜’.
오늘의 목표 지점은 장위동 ‘짝집 골목’. 가지각색의 네온 간판들이 새벽 3시의 장위동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짝집’에는 오랜만에 온다는 친구 형주(28ㆍ실명)는 두근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어디든 들어가자고 보채기 시작했다.
추운 가을 새벽이라 입김을 호호 불고 걷고 있던 그 순간, 우리의 눈에 ‘번쩍’하며 들어온 간판이 있었다. ‘물망초’나 ‘오렌지’ 같은 식상한 간판이 아니라 ‘키스미’라는 현대적 언어의 간판이었다. 형주와 나는 누가 먼저랄 사이도 없이 ‘키스미’를 향해 돌진했다.
문이 살짝 열려있던 ‘키스미’는 신장개업을 한 곳인지 새집 냄새가 풍겨왔다. 하지만 나는 이내 긴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키스미’라는 현대적 간판이 무색할 만큼 늙은 할머니 한분이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오더니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다행히 젊은 아가씨 몇이 뒤에서 고스톱을 치고 있다가 뒤늦게 우릴 발견하곤 뛰쳐나와 반겨주는 것이었다. 형주와 나는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아 대망의 대한민국 밤 문화 체득을 시작했다.
짝으로 나온 맥주와 비싸 보이는 양주, 그리고 시키지도 않은 각양각색의 안주들이 차려져 나왔다. 시간이 늦었으니 가게 문을 닫고 진하게 놀자는 아가씨들. 그 꼬임에 넘어가는 형주 때문에 마담 할머니에게 저당 잡힌 내 신용카드의 힘이었다.
한 잔 두 잔 알콜이 들어가자 형주의 선수 기질은 유감없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나는 옆자리에 내 팔짱을 끼고 앉은 아가씨의 가슴이 팔뚝에 닿을 때마다 움찔거렸지만 녀석은 역시 프로였다. 그놈의 손은 자연스럽게 파트너의 가슴 속을 마구 헤집고 있었고 치마는 이미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파트너가 말아주는 폭탄주를 양껏 마시고 비비고 또 마시고 더듬고, 녀석의 대담함은 상상을 불허했다.◎ 섹시한 女와 함께한 잠자리 회수는 몇번?
말 그대로 물 만나 물고기였다. 연신 파트너 치마 속에 머리를 넣고 있던 형주. 그런데 그가 갑자기 파트너를 데리고 옆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윽고 뭔가 실랑이가 오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뭔가가 북북 찢겨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곤 이내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결국 술에 취해 욕정을 참지 못한 형주가 다짜고짜 가게 안에서 떡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노는 것 좋아하고 거침없는 성격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 녀석이 이정도로 ‘호색한’인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계속해서 들리는 신음소리에 내가 있는 테이블은 어색함 그 자체. 그 순간 내 파트너가 ‘오빠도 함 할래?’라는 도발적인 유혹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색하게 웃다 자연스레 파트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도 남잔데 라이브로 들리는 포르노의 음향에 욕정이 안 끓어 오를리 만무. 어느 정도 술도 올랐겠다 ‘나도 모르겠다’라는 마음으로 파트너를 덮칠려는 찰나 옆 테이블에서 ‘우당탕탕’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뭔가 일이 있어났구나’란 직감이 들어 파트너와 함께 옆 칸막이로 가 봤다. 그 곳에 펼쳐진 풍광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 테이블 위에서 신나게 오입질을 하던 형주와 그의 파트너. 결국 빈약한 테이블이 둘의 무게를 못 이겨 부서지고 만 것이다.
그런데 더 문제 인 것이 그 녀석이 술을 많이 먹은 탓인지, 테이블이 부서져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때 파트너의 얼굴과 가슴에 그만 오바이트를 해 버렸다. 더욱이 녀석의 파트너 또한 자신에게 묻은 토사물을 보고 같이 토를 해버린 것. 어느새 ‘키스미’엔 시큼한 오바이트 냄새가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마담 할머니를 비롯한 가게 아가씨들이 꾸리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 내가 그런 시선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방금 전까지 자기하고 한 번 하자던 내 파트너 조차 궁시렁 거리고 있으니 어디다 하소연 할 데도 없었다.
나는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마담 할머니에게 탁자 값까지 같이 계산을 하라고 하고 형주를 들쳐 멨다. 아까 들이 붓던 폭탄주 때문인지 녀석은 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계산을 마친 마담 할머니에게 신용카드를 돌려받고 황급히 가게를 빠져 나온 나는 길바닥에 녀석을 내동댕이 쳤다.
그런데 아까까지 정신을 못 차리던 녀석이 아프다며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다짜고짜 ‘미안하다’는 말을 나에게 던졌다. 그렇다. 녀석은 떡치다 엎어져 오바이트 한 것이 쪽팔려 정신을 잃은 척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혼자만 즐길 것 다 즐기고 난동에 가까운 짓을 벌인 그 녀석을 냅다 후려 까고 싶었지만 꾹 참을 수 밖에 없었다. 형주는 어찌됐든 ‘짝집’의 생생한 풍경을 선사해 줬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게 해준 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하드코어’적인 놈을 데리고 갔다는 생각은 집에 돌아가는 내내 든 것이 사실. 문자로 발송 된 카드 사용 내역서에 ‘70만원’이란 금액이 찍혔을 땐 녀석을 죽여버리겠다는 결심도 했었다. 하지만 뻔뻔하게 살살거리며 ‘미안하다’는 말을 던지는 그 녀석에게 더 이상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밤문화 기자로서의 ‘짝집’ 첫 경험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형주와는 아직도 연락을 하지만 다음번 밤문화 경험땐 절대 놈을 불러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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